달랑 칠판 하나, 캠코더 한 대로 시작한 ‘록스타 티처’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② 비영리 교육 동영상 사이트 ‘칸 아카데미’ 설립자 살만 칸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 제312호 | 2013030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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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은 교육의 미래를 봤습니다.”
살만 칸은 미국의 비영리 교육 동영상 사이트 ‘칸 아카데미(Khan Academy)’ 설립자다. 별명은 ‘록스타 티처’. 수퍼스타급 인기강사란 뜻이다. 세계 온라인 교육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을 듣는다. 1일 현재 칸 아카데미의 누적 조회 수는 2억4200여만 회. 1년 전과 비교해 두 배로 늘었다. 4000개가 넘는 교육 동영상을 세계 23개 언어로 서비스한다. 수학, 과학, 역사, 문학은 물론 금융, 컴퓨터공학, 예술이론까지 아우른다. 이 모든 것이 무료다. 시간·공간뿐 아니라 경제적 제약마저 뛰어넘었다.
23개 언어 서비스 … 누적 조회 수 2억4200만
시작은 소소했다. 칸은 방글라데시와 인도 출신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자랐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 진학해 수학·전기공학·컴퓨터과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당연한 수순인 양 고소득 직종인 헤지 펀드 분석가가 됐다. 동부 보스턴의 잘나가는 여피족이던 그는 2004년 말 짬을 내서 12살 사촌여동생 나디아의 수학 공부를 봐주기로 했다. 나디아는 뉴올리언스에 살았기에 인터넷 과외를 시작했다.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은 데다 다른 사촌들로부터도 부탁이 이어지자 2006년 칸은 묘안을 냈다. 강의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 것이다. 채널 제목은 칸 아카데미로 정했다.
칸은 TED 강연에서 “‘실제 사촌’보다 ‘자동화(automated) 버전의 사촌’을 더 좋아하더라”는 당시 친척들의 반응을 소개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건 사실이었다. 언제든,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만큼, 폐 끼친다는 느낌 없이, 반복 시청할 수 있다는 점에 사촌들은 환호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동영상에 대한 온라인 입소문이 알음알음으로 퍼지면서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유튜브 채널에는 “처음으로 미분을 하며 미소 지었다” “마치 쿵푸를 통달한 느낌이다” “‘행렬’을 이해하다니, 하루 종일 기분 좋았다”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세계 곳곳에서 감사 편지가 날아왔다. 덕분에 12살 자폐증 아들이 분수와 소수를 이해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부모, 여름방학 내내 동영상으로 공부해 지역 대학에 만점 합격했다는 빈곤층 소년. 칸은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사람들을 돕고 있구나!’ TED 현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전 헤지 펀드 분석가였다고요. 사회적 가치 실현은 제게 무척 낯선 일이었어요.”
칸은 흥분했다. 시간을 쪼개 계속 동영상을 만들었다. 2009년 11월이 됐을 때 칸은 결단했다. 금융업계를 떠나 칸 아카데미에 집중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인근에서 칠판 하나와 가정용 비디오 녹화기만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서비스 유료화는 고려 밖이었다. 훗날 그는 경제전문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내겐 이미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들, 집과 승용차 2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칸은 비영리단체 등록을 하고 기부금을 모았다. 꿈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10년 8월 포춘은 ‘빌 게이츠 MS 창업자가 우연히 알게 된 무료 교육 사이트에 푹 빠졌다’고 보도했다. 칸 아카데미였다. 게이츠는 아들 로리와 함께, 대수학부터 생물학까지 강좌들을 두루 섭렵했다.
그는 매년 7억 달러를 교육계에 기부하는 인물이다. 게이츠는 기꺼이 칸 아카데미의 강력한 지원군이 됐다. 그해 9월엔 구글 공모전에서 ‘세상을 바꿀 5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로 뽑히는 겹경사를 맞았다. 구글은 칸 아카데미에 200만 달러를 쾌척했다. 빌 게이츠와 구글이 ‘에인절’(angel·초기벤처의 개인투자자를 이르기도 함)이 돼 준 셈이다.
실리콘밸리의 핵심 인재 속속 합류
마법 같은 스토리는 이어졌다.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닌, ‘대박’과는 거리가 먼 이곳에 실리콘밸리의 핵심 인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가장 극적인 뉴스는 크레이그 실버스타인의 합류였다.
지난해 2월 10일, 실리콘밸리 마당발인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카라 스위처가 IT전문 미디어 ‘올 싱 디지털’(월스트리트저널의 온라인 매체)에 특종을 터뜨렸다. ‘구글 1호 직원이자 개발담당 임원인 실버스타인이 퇴사해 칸 아카데미에 합류한다’는 것이었다. 스위처는 “실버스타인은 내가 ‘착한 구글’이라고 말할 때의 바로 그것을 늘 상징해 왔다”고 썼다. 실버스타인의 선택은 ‘세상을 바꾸는 것(change the world)’이야말로 실리콘밸리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요체임을 새삼 일깨웠다.
인재 영입을 통해 칸 아카데미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훌륭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표에 성큼 다가섰다. 핵심만 간추려 한 편에 15분을 넘지 않는 강의, 완벽한 습득을 목표로 정교하게 설계된 연습문제, 학습목표와 공부 주제들 간의 연관관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식 지도’, 학습시간·성취도 등을 담은 상세하고 명료한 그래픽 차트. 여기에 ‘우수 배지’ ‘에너지 포인트’ 같은 게임 요소까지 곁들여 학습 의욕을 자극한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학교들이 칸 아카데미를 수업 파트너로 삼고 있다. 집에서는 동영상을 통해 자기 진도와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는 교사와 개별적 상호 학습을 한다. 교사는 정교한 데이터를 통해 학생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칸은 교실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다고 역설한다. 또한 한국 소년이 영국 소녀의 선생이 되고, 뉴욕 대학생이 콜카타 노동자의 선생이 되는 비전을 제시한다. 그는 TED에서 “근본적으로 우리가 건설하려는 건 글로벌 단일 교실”이라고 말했다.
칸 아카데미 사이트의 직원 소개 페이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소수의 위대한 사람들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믿습니다’.
뛰어난 엘리트가 자신의 능력을 세계를 위해 쓰기로 했다. 돈이 있는 자는 돈으로, 지식이 있는 자는 지식으로 그 길에 동참했다. 세계의 수많은 교사와 학습자, 자원봉사자들이 그 변화에 가속도를 붙여주었다. 살만 칸은 자신의 신념을 멋지게 증명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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